2015년은 학점 잘 받자고 참 열심히 살았던 거 같다.

 

근데 2016년도가 되면서 말 그대로 학점이 심해로 처박혔다.

 

 

오해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이 16년도에 공부하기 싫다고 3학점만 들은 게 아니고

 

18학점 제대로 수강했다.

 

다만 성적이 개판 쳤을 뿐이다..

 

이후에 재수강으로 열심히 매꿔서 3학점만 덩그러니 남았을 뿐.

 

 

 

 

그래서 학점이 왜 이래요 라고 물어본다면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당연하게 학업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것이 주요한 이유겠다.

 

 

다시 학업에 관심이 줄어든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예술·창작 연합동아리 활동 때문이라 대답하겠다.

 

 

'1기' 모집을 보면 알 수 있듯

 

당시 갓 만들어진 따끈따끈한 연합동아리였다.

 

 

마침 우리 학교가 신촌과 가깝기도 했고

 

뭔가 나만의 작품 같은걸 제대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

 

게다가 예술작업이라곤 고등학교 미술/음악시간이 전부였던 나도

 

손쉽게 들어가서 작품을 만들 수 있다길래 냉큼 신청했다. 

 

그리고 다행히 붙었다.

 

 

 

전공자 1명에 비전공자 3~4명이 그룹을 이뤄

 

전공자가 비전공자를 상대로 멘토 역할을 해줬는데

 

사진/영상, 공예, 패션, 포토샾 등등 여러 전공자의 그룹 활동이 있었다.

 

그중에 나는 서양화를 선택했다.

 

 

 

 

 

 

사실 영상/사진 전공자 그룹과 서양화 전공자 그룹

 

둘 중 고민을 많이 했다.

 

영상 편집 툴로 베가스를 사용할 줄 알았기 때문에 사진/영상 그룹에 들어갈까 고민했는데

 

영상보다는 사진위주로 활동을 하실 듯싶어

 

다른 쪽을 찾아봤다.

 

 

 

 

 

 

 

 

서양화 전공이라는 말과 활동 소개를 보며

 

굉장히 미대스러운데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붓, 캔버스, 물감이 필요 없는 디지털 페인팅도 가능하다는 말에 제대로 꽂혔다.

 

 

집에 봉인된 고물

 

그 길로 서양화 전공자의 그룹 활동에 참여했고

 

바로 태블릿도 구매했다.

 

 

그 당시 10만 원 넘게 주고 샀는데

 

요새 아이패드와 애플 펜슬로 편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보니

 

이제는 사용하지 않고 창고에 넣어둬서 먼지만 쌓이는 중이다.

 

 

 

 

기본기 연습부터 작품을 만들 때까지

 

쭉 사이툴 프로그램(Paint Tool Sai)을 사용해서 그림을 그렸는데

 

개인적으로 정말 직관적이었고 사용하기 쉬워서 좋았다.

 

내 첫 번째 작품을 그렸던 과정이다.

 

러프하게 밑그림을 그리고

 

선을 따고

 

색을 칠하고

 

배경을 칠했다.

 

 

제목과 컨셉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음 제목은.. 솔직히 기억이 안 난다.

 

컨셉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나오는 기차 정거장이다.

 

 

 

  

 

내 두 번째 작품 토토로다.

 

이번 그림을 그리면서는 선을 따지 않고 바로 그림을 그렸다.

 

 

레이어를 3개로 나눠서

 

하나는 토토로

 

하나는 배경

 

하나는 앞에 수풀

 

이렇게 세 개로 그렸다.

 

 

레이어 순서를 수풀-토토로-배경으로 완성시켰다.

 

 

이렇게..

 

 

맥에서 윈도우를 쓰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저때는 맥용 사이툴이 많이 불안정했었다. 요새는 모르겠는데..

 

어쩔 수 없는 부트캠프였다.

 

 

 

 

그래서 무엇을 위해 이렇게 그림을 그렸냐 하면

 

 

 

매 학기마다 있는 과제전(전시회)을 위해서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그린 파일을 들고 아마? 이 업체에 찾아가서 프린팅 했던 걸로 기억한다.

 

디지털 페인팅 파일을 캔버스에 프린팅 해주는 업체였다.

 

 

시간을 쪼개 룰루랄라 사이툴 파일을 들고 갔더니

 

업체에서 난색을 표했었다.

 

사이툴이라는 프로그램이 굉장히 마이너 한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파일 자체가 본인들 프로그램에서 열리지 않을걸 염려했고

 

설사 열리더라도 본인이 그린 색상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이툴이라는 프로그램을 처음 듣는다고 했다.

 

 

다행히도 파일이 열렸고 내가 생각했던 색상과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그제야 색상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줬다.

 

일러스트나 포토샾을 쓰는 경우 색상값이 정확하게 존재하고 프로그램 간 연동이 잘되는데

 

다른 프로그램은 그게 힘들어 정확한 색상값으로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뒤이어 어도비 프로그램을 쓸 것을 추천해줬다.

 

마이너 한 프로그램은 최악의 경우 아예 사라지기도 하고

 

어도브 프로그램은 그럴 걱정 없이 업계에서 많이 사용하니까..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 무사히 캔버스에 프린팅을 했다.

 

프린팅을 하면 천 쪼가리만 나오는데

 

이 천 쪼가리를 전시할 수는 없으니 근처 화방에 가서

 

업계 용어로 '와꾸를 대달라'(캔버스 뒤에 나무 틀을 잡아준다. 라는 뜻인듯 싶다.)고 하면 된다고 했다.

 

 

사장님이 시키는 대로 고대로 따라 했다.

 

 

그 결과 완성되어 전시된 나의 작품이다.

 

 

이 외에는 물감을 사용해서 직접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자화상을 그리기로 했는데 오른쪽 밑에 있는 생쥐가 나다.

 

인물화를 그려봤는데 너무 답이 없어서

 

그냥 캐릭터화 시켜서 그렸다.

 

 

 

 

전시 같은 경우 

 

 

 

메가박스 신촌 퇴출로(영화 다 보고 나오는 곳)에 그림을 걸고 전시회를 열었다.

 

동아리 회장 말로는 무료로 전시할 기회를 주셨다고 한다.

 

 

 

 

 

 

그렇게 1학기 활동이 마무리되고 2학기가 되었다.

 

2학기에는 새롭게 인원을 충당했다.

 

마침 기획부(운영진)를 모집하길래 옳지 싶어 지원했고

 

면접보고 붙었다.

 

 

왜 운영진을 모집하나 했는데, 기존 운영진들이 전부 미대생이었고 

 

인원도 적고 본인들 학과 작품 준비로 많이 바쁘기도 하여

 

동아리 운영을 하기에 너무 벅차다고 했다.

 

 

마침 군 입대를 위해 휴학을 던졌음을 말하자

 

격하게 환영해줬다. 

 

외우라고 준건데 일주일도 안돼서 저절로 외워졌다.

물론 이때 롯데시네마 드리미로 알바를 하고 있어

 

물리적으로는 휴학하기 전이나 다름없는 바쁜 삶이었지만

 

학업이 빠지니 그래도 심적으로는 많이 편했었다.

 

 

 

운영진으로 굴려지는 만큼

 

직접 지원서(미니 자소서)를 받고 면접을 봤다.

 

 

여담이지만 면접관의 관점에서 면접자를 보고

 

다시 나를 돌아볼 수 있다는 점은

 

꽤 좋은 경험이었다.

 

 

 

엄~청긴데 앞에 멀쩡한 부분만 쪼끔 뜯어와본것.

 

막 만들어진 동아리다 보니 운영진끼리 머리를 맞대고 회칙도 만들어봤었다.

 

 

지나서 생각해보니

 

만들긴 만들었는데 내용 자체도 엄청 빡빡했었고 쓸데없이 길었다..

 

 

솔직히 내가 다음 운영진이라면 그냥

 

다시 만들 것 같다.

 

 

 

 

 

 

 

회비 걷어 제1회 동아리 MT도 갔다.

 

가평같이 멀리 가기 싫어서 홍대 쪽에 게스트 하우스를 대관하고 싶었는데

 

홍대쪽 게스트 하우스는 다 foreign only라서 

 

한국사람들이 갈 게스트 하우스는 없었다.

 

그래도 양해를 구하고 여러 호스트들께 열심히 연락해 본 결과.

 

한 게스트 하우스에서 한층을 대관해주겠다는 답장을 받았다.

 

엠티 1주일 전에 겨우 장소를 확정했다. (고통)

 

foreign only라서 장소 구하기는 어려웠지만

 

의외로 좋았던 점은

 

 

 

외국인들과 함께 동아리 엠티를 즐길 수 있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우리끼리 놀았는데

 

술 먹는 소리를 들었는지 

 

Party? 아래층에서 올라와 자연스럽게 같이 놀았다.

 

 

화이트보드 들고있던 2016년 끄트머리의 나

 

 

 

동아리 운영진이 되어서 가장 좋았던 점 하나를 꼽아보라면

 

여러 예술 전공자들과 정말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점이다.

 

특히 아까 현대미술을 하신다던 사진/영상분야의 전공자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분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분 덕분에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예술작품에 본격적으로 철학적인 접근을 하기 시작했으며

 

예술작품뿐만 아니라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까지도

 

많이 달라졌다.

 

 

 

 

이때부터 미학에 관심을 갖고 책도 읽기 시작했다.

 

 

 

이 분의 전시/공연도 참석해 보았다.

 

형태와 방식에 얽매이지 않는 표현법과 소통방식을 직접 보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동아리 특성상 번개나 친목목적으로 여러 전시회를 돌아다녔지만

 

가장 기억에 남아있는 건 이거다.

 

 

현대미술(사진/영상 전공자) 하시는 그분께서 추천해준 것이다. 

 

 

4시 44분에 어떻게 딱 찍었다.(합의된 납치극 미디어시티서울2016 돌아가는길 中.)

 

어쩌다 보니 이야기가 딴 길로 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 동아리의 가장 큰 이벤트는 학기가 끝날쯔음의 전시회다.

 

 

동아리 전시회에 걸린 작품들이 아니다. 그냥 사전답사때 우연히 찍힌. 다른 작가분들의 작품들이다.

 

전시회 시기가 군대 입대 후라 직접 참석하지는 못하지만,

 

마지막까지 유종의 미를 거두고자 전시회 할 곳을 답사했다.

 

 

그 결과 합정에 있는 카페를 대여했다.

 

 

"왜 카페나 영화관 같은 마이너 한 곳을 빌리는 건가요?"

 

금전문제 때문이었다.

 

 

전문 전시관 같은 경우, 수백만 원의 대관비를 줘야 한다.

 

당시 인원수도 많지 않았는데

 

기껏해야 한 명당 2~3만 원을 회비로 걷어가서 모든 걸 해결하기엔 돈이 부족했다.

 

오래되어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50만 원 언저리에 카페에서 전시할 수 있었다.

 

 

 

 

 

 

전시회의 콘셉?이라고 하자면 '감전'이었는데

 

내가 만들었던 포스터

 

나름대로 1년간 쌓아왔던 내공으로 전시회 포스터까지 만들고 갔다.

 

 

 

물론 전공자인 다른 운영진이 만든 게 채택되었다.

 

훨씬 감각적이다.

 

 

 

 

 

 

그래서 1년간 동아리 활동의 결론이 뭐냐면

 

군대 엔딩이다.

 

 

이후 군대에서 대부분의 동아리 사람들과 자/타의적으로 연락도 끊겨서

 

남은 거라곤 조져버린 학점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나의 22살. 한 해를 후회하진 않는다.

 

 

 

이 글을 쓰면서 이 동아리가 아직 살아있나 찾아봤다.

 

내 1년을 쏟아부은 동아리는

 

아니 내 20대 초반의 마지막을 쏟아붓고 나온 동아리는

(전역하고 얼마 안 지나 25살이 되어버렸으니)

 

2019년 마지막 모집으로 끊겨있다.

 

 

어떤 감정으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섭섭한 건지, 아쉬운 건지, 그리운 건지.

 

 

 

음 그냥,

 

 

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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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e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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