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왓차를 둘러보다 디지몬을 발견했다.

디지몬 어드벤처의 오랜 팬이기도 했고
예상 별점 5.0은 도저히 지나칠 수가 없었다.

시작하자마자 반기는 두 디지몬.

단번에 이 장면이 생각난다.

반가움을 뒤로하고
오랜만에 만난 태일이는 대학생이다.
태일이도 우리들과 비슷한 나이가 되었다.


태일이는 졸업을 해야 할지, 취업을 해야할지
무엇을 해야할지 잘 모른다.

오랜만에 보는 매튜.
대학원에 진학한다고 한다.



그러는 매튜도
사실은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고 방황하는 청춘이다.

메인 스토리의 빌런이다.
근데 어디서 많이 본 구도다.

왠지 얘가 생각났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그래도 반갑다.

오메가몬으로 진화까지 했지만,
빌런을 해치우기 직전에
갑자기 진화가 풀린다.

황당해하는 친구들 앞에서
무려 14살에 대학에 입학하셨다는
디지몬학 전공이신 천재 박사님께서 갑자기 등장.
그리곤 친절하게 설명을 해준다.

















우리는 어른이 되어가면서 선택을 한다.
선택을 한다는 말은 역으로
기회비용을 따져보고 하나하나 가능성을 소거해나가는 과정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렇게 어린 시절 무엇이든 될 수 있었던 우리는
어떤 것만 될(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뀐다.


이 장면을 보고
디지몬이라는 존재 자체를
나의 어린 시절로 치환하여 보게 되었다.
우리가 어른이 되면
어린 시절과 단절하게 되는 걸까?
동심과 같은 그 시절의 감성들을 송두리째 잃게 되는 걸까?


언제나 함께하고 싶다.



빌런의 활약으로 미나도 리키도 한솔이도 나리도 정석이도
모두 의식을 잃어버리고 파트너 디지몬들도 모두 사라졌다.

사실은 메인 빌런인 교수님.






그렇게
태일이와 매튜는 선택받은 아이들을 구하러 갔지만
사라진 모두는 교수가 만든 공간에서
어린 시절로 돌아가 행복한 순간 속에 머물러있다.

교수는 이곳을 네버랜드라고 칭한다.
피터팬이 살고 있는
나이를 먹지 않는 그 섬이다.
실제 피터팬 소설에서는
부모를 떠나서 들어온 아이들만 나이를 먹지 않는다.
즉, 자신의 의지가 중요한 셈이다.
선택받은 아이들은 사실상 납치를 당했다.
자발적으로 납치당하는 사람이 존재할리 없다.
그런데 어째서 이들은 어린 시절에 멈춰있는 걸까


내말이



피터팬 증후군.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어린아이이고 싶다.
어쩌면 마음 한편에 모두가 가지고 있는 생각일 수도 있다.
꼭 어린아이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찬란했던 혹은 즐거웠던
그 시절, 그 시기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모두에게 조금씩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실 네버랜드를 만든 교수님도 선택받은 아이였다.



누구보다 상실의 아픔을 알기에
네버랜드를 만든 것이다.


압도적인 전력차에 몸을 숨기고
좌절하는 주인공들.




이 장면을 보고
마치 나의 어린 시절이
나에게 말을 거는 듯싶었다.

그래 봐야
다구리 앞에 장사 없다고
싸우러 나가지만
네버랜드에 있고 싶은 친구들은 주인공 일행을 방해한다.




태일이는 나리의 호루라기를 분다.
삶에 지쳐, 패배감에 찌들어
힘들어하는
그래서 과거에 머무르고 싶은 이들에게 건네는 말일 것이다.

20년 전,
그레이몬은 앵무새 디지몬인 패럿몬과 싸워
패배해있었다.
그러나, 녹다운된 그레이몬은
태일이의 호루라기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다시 일어나
앵무새 디지몬과 싸워 이겼다.
태일이는 모두에게 호루라기를 불어서
힘들고 지금 당장 지쳐 쓰러져 있더라도
다시 한번 일어서서 도전해보자는
그런 말을 건넸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네버랜드에서
어린이가 아닌 어른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런 영화의 결말은 뻔하다
주인공이 격려와 응원에 힘입어 파워업을 하고
빌런을 무찌르면서 끝난다.













그녀의 세계가 부서지면서
그녀의 과거를 볼 수 있다.
그녀의 과거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없어
자세한 속사정은 모른다.
음. 글쎄,
다만, 차별 때문에 어른이 되고 싶었고
남들보다 빨리 선택을 해나갔다.
그렇게 너무나도 일찍
어린 시절을 잃어
그 상실감에 대한 반작용으로 네버랜드를 만들었던 건가?.




교수의 독백일 수도 있고
어쩌면? 나이가 먹고 훌쩍 커버린,
길을 잃고 방황하는 이들의 절규일 수도 있다.




이 독백에 대해
제작진은 답을 건넨다.
혹은,
졸업과 취업, 대학원 사이에서 무엇을 할지 몰라 고민하던
태일이와 매튜는 스스로 답을 찾아낸다.

무사히 선택받은 아이들을 구해
교수는 체포된다.

전세계의 선택받은 아이들은 깨어나고 파트너 디지몬도 되돌아온다.
이 밑의 장면이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어린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걸어오는 말 같기도 했고
그때 그 시절의 아구몬과 파피몬이 직접 나에게 걸어오는 말 같기도 했다.

































태일이와 매튜는
내일의 일을 선택하지 않았다.
이별이 두려워 어른이 되는 것을 잠시 미뤘다.
그래도 아구몬과 파피몬은 사라졌다.
이들이 직접 박사에게 건넨 말처럼
숙명은 바꿀 수 없던 것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이제 운명을 바꿀 것이다.



뒤늦게 밝히지만 빌런의 이름은 에오스몬.
에오스의 뜻은 '새벽의 신'의 이름이다.
빌런이 죽었다는 건 새벽이 끝났다는 의미이며
새벽이 끝나면 새로운 시작인 아침이 온다.
영화는 태일이와 매튜가 봄을 맞으면서 끝난다.
생명이 태동하고 꽃이 피는 봄이라는 계절이 상징하는 바는
태일이와 매튜 모두 방황을 끝내고 새로운 시작을 했다는 게 아닐까.
이번 극장판은
취업난에 허덕이고 불안한 미래에 어디로 갈지 몰라 방황하는 청춘들
혹은
어린시절을 디지몬과 함께 지냈던
우리 세대에게 주는 격려쯤이 아닐까 싶다.
완벽하게 만족스러운 영화였냐하면
아니다.
그래도 나의 어린 시절아
반가웠어